교회소개
할렐루야! 홈페이지를 방문하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1990년4월26일 교토에서 시작한 교토순복음교회는 한국의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지교회로서 하나님이 주신 민족 복음화와 세계선교라는 사명을 가지고 지금까지 믿음의 전진에 발맞춰 왔습니다. 그리고 늘 영혼 구원과 성령 충만, 구제와 사랑 실천에 힘써 왔습니다. 교토에 이렇게 순복음교회가 세워진 것은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이루어 진 것입니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성령의 역사를 이어 나가기 위해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주신 비전을 따라 순종하며 나아가기 원합니다.
올 한해에도 주님 안에서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교토순복음교회에서 함께 신앙으로 하나되어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주님의 귀한 지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God bless you!
순복음이란
「순복음」이란 새로운 복음이나 이론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수한 복음입니다. 「순복음 」은 어떻게 하면 성경 말씀을 하나님의 본래 의미대로 이해하고 생활에 적용하는가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고 행함으로써 복음의 순수성을 유지하고 그 힘을 회복하려 하는 것에 있습니다
「순복음」은 영어 ‘Full Gospel’의 번역입니다. ‘Full Gospel’은 ‘충만한 복음’ 으로, 신본주의에 입각해 성경전체의 내용을 그대로 (Fully) 모든 것(Totally)을 믿고, 받아들이는 7주의 절기 성령충만의 복음을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복음 신앙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결과로써 받은 영의 구원뿐만이 아니라, 육체의 병으로부터 치유, 생활의 저주로부터의 해방 등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는 전인적인 구원의 복음을 강조하는 순수한 복음주의 신앙을 의미합니다.
<갈보리 십자가 신앙>
순복음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들을 위해 피 흘리시고 죽으신 후 부활하신 것에 대한 그 구원을 믿고, 받아들임으로 얻어지는 신생의 복음, 즉 갈보리 십자가 신앙입니다. 이 갈보리 십자가 신앙은 복음이 중심이 되며 순복음 신앙의 기초이며 출발이 됩니다.
<성령충만의 신앙>
순복음 신앙은 성령이 충만한 초대교회 신앙을 오늘날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재현시키려고 하는 신앙입니다.
<땅끝까지 선교하는 신앙>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을 통해서 거듭나고, 성령의 힘을 충만히 받은 성도는 자연히 자기가 체험한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마음을 갖고 성장합니다.
<좋으신 하나님을 믿는 신앙>
순복음 신앙은 우리에게 구원과 축복을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으로 사랑의 하나님을 철저히 믿는 믿음입니다.
<병을 치유하시는 예수님을 믿는 신앙>
순복음 신앙은 오늘날에도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뿐 아니라, 병도 구속해 주시는 것, 그 은혜를 지금도 내려 주시는 것을 확신하고 이것을 실천하는 믿음입니다.
<재림의 예수님을 믿는 신앙>
순복음 신앙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새로운 신천지와 영원한 나라를 바라고 현재를 살고 있는 삶속에서 최선을 다해 주를 섬기려는 종말론적 신앙입니다.
<나눠주는 신앙>
나눠주는 신앙이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축복을 먼저 하나님께 드리고 이웃에게 나눠주며 구제하는 믿음을 말합니다.
五重の福音
純福音の基礎になるのが「五重の福音」です。「五重の福音」とは、「新生の福音」、「聖霊充満の福音」、「癒しの福音」、「祝福の福音」、「再臨の福音」をいいますが、これらは聖書の主要な五つの主題でもあります。これら五つの主題はキリスト教信仰の始めからの過程と結果について扱っており、信仰生活の全過程を説明している核心主題です。
이 순복음의 기초가 되는 것이 「오중복음」입니다. 「오중복음」이란, ‘거듭남의 복음’, ‘성령충만의 복음’, ‘치료의 복음’, ‘축복의 복음’, ‘재림의 복음’을 말합니다. 이것은 성경의 주된 다섯개 주제이기도 합니다. 이 다섯 주제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첫과정과 결과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결국 신앙생활 전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핵심 주제가 됩니다.
오중복음의 기초는 거듭남(Regeneration)의 복음입니다. 거듭남이란 구원의 전제조건입니다(요3:3). 그러므로, 거듭남의 복음은 구원의 복음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오중복음의 기초가 되는 거듭남의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기 뒤해서는 먼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거듭남으로의 길」
인간이 죄와 형벌과 사단의 힘으로부터 자유를 얻고 해방되기 위해서는 구원이 필요합니다. 인간은 아담으로 인해 정죄 받아(롬5:16), 모두 죄인이 되어, 스스로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롬3:23). 하나님은 인간이 조를 범하고 타락한 직후에 구원을 예시하였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
이 말씀에서, 여자의 후손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로, 그후 예언자들의 예언을 통해서, 계시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예언된 말씀대로 자신을 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속죄물이 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통한 구원은, 다음 네가지 의미를 시사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십자가의 구원과 죽음은, 인간의 죄의 결과가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준다 (사53:5).
두번째,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를 보여주고 잇다(롬5:8).
세번째, 한 사람의 인간의 가치가 얼마나 큰가를 보여주고 있다(마16:26).
네번째, 죄 용서함의 대가가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사53:6).
「거듭나는 방법」
구원에 이르는 두가지 조건은 바로 회개와 믿음입니다. 회개와 믿음은, 동시에 일어나는 하나의 사건의 양면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조건의 하나는, 회개입니다. 세례요한이 부르짖은 최초의 한마디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3:2) 이었고,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예수님의 첫마디도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 이었습니다. 또한 성령 강림 후, 사도 베드로도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행2:38, 3:19) 라고 외쳤습니다.
구원에 이른는 또 하난의 조건은 믿음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감옥의 간수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행16:31) 라고 외쳤습니다. 이 구원의 믿음은, 하나님의 성실한 약속의 말씀에 대한 이 구원의 믿음은, 하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믿음의 위에 하나님의 믿음이 주어질 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구주로 확실히 믿는 믿음은, 성령에 의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습니다(고전12:3).
「거듭남의 결과」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어떤 결과에 이르게 됩니까?
첫번째, 성령이 우리들 안에 거하게 된다(롬8:11).
두번째, 죄와 죽음의 원리로부터 해방된다(롬8:1,2).
세번째,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이 주어진다(요1:12).
네번째, 하나님이 계획하신 대단한 축복이 저주어진다(요삼1:2).
거듭남을 체험한 신자들은 성령세례를 받고, 성령충만하게 되어야 합니다. 성령충만할 때 권능을 얻고, 복음을 전파하게 되며, 또 성령으로 깨끗함 받고 죄악의 힘과 본성적인 타락으로부터 떠나, 성결한 생활을 보내게 됩니다. 소극적인 신앙으로부터 떠나 감격과 감동에 넘쳐,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파하며, 거룩한 인생을 살아가려고 하는 것이 성령충만한 복음입니다.
「성령의 신성과 인성」
성령은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과 함께 삼위일체 되시는 하나님의 제삼위격이고 (행5:3,4; 마28:19,20), 하나님의 속성을 모두 갖고 계십니다. 성경은 성령이 하나님의 속성인 영원성 (히9:14), 전능성(눅1:35), 전지성(고전2:10), 편재성(시139:7,8)등을 모두 갖고 계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령은 인격을 갖고 계신다는 통찰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요소 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신앙생활이 보다 깊고, 힘 있는 현실적인 열매를 맺도록 하는 사역이, 바로 인격적인 성령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영접할 때, 생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역사」
예수님은 성령이 오시면, 죄에 대해, 의에 대해, 심판에 대해 세상에 그 잘못됨을 인정하게 합니다 (요16:8-11). 성령은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고,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합니다 (요3:5). 성령은 믿는 자 가운데 거하고 (요14:16), 가르치며(요14:26), 인도하시고(롬8:14),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십니다(롬8:26). 그 외에도 성도에 인치심을 주시고 (엡1:13,14; 딤후2:19), 보내시며(행13:4; 16:6,7; 고전12:11), 보증이 되시며 (고후1:22; 엡1:14), 능력과 기름을 부으시며(눅24:49; 행2:1-4; 고후1:21; 요일2:20, 27), 몸을 부활하게 하시며 (롬8:11; 고후4:14),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해 주십니다 (롬8:16; 갈4:6).
「거듭남과 성령세례」
거듭남과 성령 세례는 확실히 다른 별개의 체험입니다. 물론 이 두 체험이 동시에 일어나기도 하고, 어느 일정 시기에 일어나기도 합니다만, 서로 다른 체험인것은 확실합니다. 성경에는 거듭남의 체험을 한 성도들이 성령 세례를 받지 못한 예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행1:4, 5; 8:14-17).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는, 영혼을 보호하시며, 복음을 전파하는 위대한 복음 설교가(Preacher)이시고, 제자들을 가르치는 위대한 교사(Teacher)일뿐 아니라, 육체의 병을 치유하는 위대한 치유의 주(Healer)이기도 합니다 (마4:23). 이처럼 병고침은, 예수 그리스도의 주된 사역이며,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시는 크신 은혜입니다.
「병의 근본」
병의 원인은 여러가지로 있습니다만, 성경적으로 볼 때, 병의 주요 3대 원인은 사단과 범죄와 저주입니다.
a) 사단이 인간을 다스리고, 병을 유발시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막9:25).
b) 또한, 인간이 범한 죄의 결과로 병에 걸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c) 그리고, 인간이 하나님의 모든 가르침을 지키고 행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아 병의 고통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28:58-62).
「병을 속량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병을 속량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구약의 모형은 여러가지 있습니다. 그 중에서 중요한 것이 유월절의 어린양 (출12장, 민 9장)과 마라의 쓴 물을 달게 한 나무(출15장)와 모세의 놋뱀 사건(민21:4-9)입니다.
죄사함과 병치유, 이 두가지는 예수님이 가시는 곳곳에서 행하신 중요한 사역입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실 때마다 죄사함과 병치유를 불가분의 관계로 연관시키시고, 전인적인 치유를 행하셨습니다(막2:9, 10).
예수님께서 십자가 극형을 받고, 채찍질 받지 않으면 안되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것에 대해 성경은 예수님께서 채찍질 받은 것은 우리의 병을 치유키 위한 것이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질 당하심으로 우리의 병과 연약함을 대신 속량해 주신 것입니다(사53:4; 벧전2:24).
「치유의 조건」
치유의 조건은 기도와 믿음과 말씀 준수입니다.
첫번째로, 성경은 성경엔 기도함으로 병고침 받은 예가 곳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고보 5장 14, 15절에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낙심하지 말고, 계속해서 기도 할 때 치유의 체험을 할 수가 있습니다.
두번째로, 치유는 본인이나 타인의 믿음에 의한 경우가 있습니다. 막5장에 나오는 12년동안 혈루병
인간은 누구나 축복받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또 하늘과 땅과 그 안의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이 은혜 속에서 풍요로운 생활을 하기를 원합니다.
“물질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이해”
하나님의 축복은 천지창조 때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건설하기 전에 이 세상의 물질을 먼저 만들고 그것을 좋게 하셨습니다(창 1장). 하나님이 지은 만물은 선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인간은 인생의 첫날을 하나님과 함께 풍부한 물질을 즐기고 휴식하면 좋았습니다. 여기에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근본적인 의도가 나타납니다.
“십자가의 부족이 없으면 축복”
“당신은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고 있습니다. 즉 주님은 풍성하셨지만 여러분을 위해 가난하셨습니다. 그분의 가난함으로 풍성한 자가 되기 때문이다.”(고전 8:9)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저주를 받으시고,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나게 하셨다. 성경 에, 「나무에 걸리는 자는, 모든 저주받는다」라고 쓰고 있다. (갈라디아 3:13).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이 땅에서 가난해진 것은 우리를 풍요롭게 해주기 위해서이며 저주로부터 우리를 오르기 위해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 축복을 받지 못하면, 우리는 예수님이 가난하게 된 것을 괴롭히게 됩니다. 또한 성서는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다행이다”(행 20:35)라고 말합니다. 기독교의 근본적인 생활이념은 이렇게 ‘준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희망을, 기도를, 물질을 줄 때, 진정으로 축복받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희미한 종교적인 환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제나 깊은 계획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성실한 약속이며, 성경이 보여주는 분명한 미래사입니다.
“재림의 목적”
1.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예언과 예수 자신의 약속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 오신다.
2.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사람을 부활시키고 성도를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바꾸기 위해 오신다(빌 3:20, 21).
3.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을 멸하기 위해 오신다 (계 20:14).
4. 예수 그리스도는 성도들을 계획의 장소로 인도하기 위해 오신다(요 14:2, 3).
5. 예수 그리스도는 마지막으로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을 심판하기 위해 오신다(디모데 4:1).
「재림의 시기」
재림의 때가 언젠가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그 날,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사도들도, 또 아들도 모르는, 단지 아버지만 알고 계신다”(마태 24:36)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전세계에 전파한 후, 오셔서(Ⅱ테살로니가 2:2, 3), 나팔의 울림과 함께 오게 되어(Ⅰ고린도 15:51, 52), 노아의 날처럼 오신다. 마태복음 24:37~39)라고 가르칩니다.
「재림 전후의 사건」
1. 공중 재림 Ⅰ 테살로니가 4:16, 17에 약속된 바와 같이, 주님께서는 호령과 천사의 목소리와 하나님의 래퍼의 울림 가운데 자기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이때 주님께서 기름을 준비하고 있는 교회와 성도를 구름 속으로 끌어올리지만 이를 ‘휴거’라고 부르고 예수님이 공중까지 오실 수 있는 것을 ‘공중 재림’이라고 합니다.
2. 7년 환난 휴거된 성도들이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공중에서 혼례의 축연을 하는 동안 지상에서는 환난이 계속됩니다. 이 환난의 기간이 7년 정도이기 때문에, 「7년 환난」이라고 부릅니다(다니엘 9:27).
3. 지상 재림 공중에서 어린 양의 혼례 축제가 끝날 때 예수님은 인상된 성도들과 함께 지상에 강림합니다. 이것을 「지상 재림」이라고 부릅니다.
4. 천년 왕국 사탄이 묶여 바닥 모르는 곳에 닫힌 후(계 20:1~3), 이 지상에는 “천년 왕국”이 설립됩니다. 이 왕국의 왕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5. 하얀 보좌의 심판(계 20:11) 하나님은 우주의 한 곳에 심판의 자리를 놓았으나, 이 재판의 자리가 “흰 보좌”입니다. 심판이 시작되면 그 전에 모든 죽은 사람은 부활하여 서서 각각의 행위에 따라 심판됩니다(계 20:14).
6. 신천 신지 마지막에는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이 도래합니다. 성도가 들어가는 나라는 영원히 새로운 것입니다 (계 21:1). 이와 같은 신천신지에 새로운 예루살렘이 내려옵니다(계 21:2). 이 새로운 예루살렘은 신텐 신지의 도시입니다. 이 새로운 예루살렘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대해서는 신부가 남편을 위해 꾸며진 것 같다고 묘사되어 있습니다(계 21:2).
‘종말적 삶의 태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비하여 성도는 기름을 준비한 5명의 딸처럼 항상 눈을 돌려야 합니다(마태복음 24:42, 25:2~13). 그리고 열심히 전도해야 합니다. 전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소원이며(마태복음 28:18~20; 마가복음 16:15~18; 사도행전 1:8) 가장 큰 관심사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때가 좋든 나쁘든 전도에 힘을 다해야 합니다(디모데 4:2). 영의 구원, 이것이 우리 삶의 가장 큰 사명이며 목표입니다. 마지막으로 성도는 재림을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희망은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재림과 영원한 나라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나라를 사랑하고 기다리는 태도로 보내야 합니다(베드로 3:11, 12). 아멘. 주 예수님, 오세요!